누군가에게 필요한 정보일 수 있을 것 같아 오랜만에 글을 쓴다.
꼭 가야하는 일정이 있어서, 일하고 있는 영국 학원에 휴가를 내고 지난 주 한국을 다녀왔다.
휴가를 어렵게 받은지라 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사고 막 떠나려는 즈음(1월 말) 영국에서도 우한 폐렴에 대한 우려가 조금씩 생겼던 것 같다.
우리 학원 매니저도 중국 학생들 안받아야 되는거 아니냐, 또는 한국에는 확진자 없냐 등을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때까지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영국 내 확진자도 0명이었다.
나도 한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감기에 걸려있었고 원래 천식, 비염도 있어서(몹쓸 기관지)
지하철에서 기침하고 학원에서도 기침하고 코풀러가고 그랬지만 쳐다보거나 눈치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1월 말부터 지난 주 2월 9일까지 한국을 들렀다 왔고,
한국에서 공항, 지하철 모든사람이 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마스크를 끼고 만났고, 동네 어디를 가더라도 마스크를 꼭 끼고 갔다.
한국에서 나름 푹 쉬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면서 감기를 거의 나아서 왔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감기기운이 다시 심해지는게 느껴졌다 (잠을 거의 못자고 출발함ㅠㅠ)
비행기에서 마스크 끼고 기침하고 코풀때 크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고, 그래도 사람들이 걱정할까봐 조심조심 처리했다.
비행기 내에 나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기침하고 코풀고 있었고 승객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한국-런던 직항 영국항공 British Airways)
한 중간쯤 왔을때 방송으로 기침하거나 열이 나는 사람은 승무원에게 알려달라는 방송이 나왔고,
혹시나 주변사람들 걱정할까봐 승무원 불러서 "나 기침을 하긴 하는데 원래 천식이 있고 감기가 런던에서부터 걸려있었다"라고 말하니
중국 갔다왔냐, 열은 없냐고 물어봐서 중국 안갔고, 열 없다고 했더니 그럼 괜찮다고 하더니 놔뒀다.
런던은 공항에서 짐 찾을 때 부터 마스크를 낀 사람이 거의 없었고, 지하철에는 아예 한 명도 없었다.
공항에서 오는 지하철인데 이 정도면 시내에도 마스크 낀 사람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도 그냥 공항 나오면서부터 안꼈다.
중간에 물 마시다가 사레 걸려서 기침을 켁켁 몇 번 했는데 힐끗 보는 사람은 있었는데 눈치를 주거나 피하는 사람은 없었다.
런던은 또 마침 태풍인지 강풍인지 때문에 지하철 지연이 말도 안되게 심했고, 나는 스트레스+추위+비바람 3종세트를 맞으면서 꾸역꾸역 지하철 타고 오다가 중간에 열받아서 그냥 우버를 타고 왔다.
집에 와서 아무거나 주워먹고 그대로 뻗어서 다음날 일을 하러 가려고 했는데, 기침을 계속 하고 있어서 일하러 가봤자 민폐만 끼치겠다 싶어서 학원에 연락을 했다.
'나 기침을 계속 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가서 열 재보고 내일부터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요렇게 메일보내고 전화를 했고,
그냥 하루 푹 쉬고 다음날 일을 가려는 생각이었는데, 병원 한번 가볼까 하고 찾아보다보니 한국도 코로나바이러스 특별 지역으로 선정되어있었다. (긴 여정의 시작...ㅋㅋㅋ)
아래는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영국 정부의 공지글
아래는 한국 및 일부 국가 여행자에 대한 안내
Travellers from other parts of China and other specified areas
This advice applies to travellers who have returned to the UK from the following areas:
- China
- Thailand
- Japan
- Republic of Korea
- Hong Kong
- Taiwan
- Singapore
- Malaysia
- Macau
If you have returned to the UK from any of these areas in the last 14 days and develop symptoms of cough or fever or shortness of breath, you should immediately:
- stay indoors and avoid contact with other people as you would with the flu
- call NHS 111 to inform them of your recent travel to the country
In Scotland phone your GP or NHS 24 on 111 out of hours. If you are in Northern Ireland, call 0300 200 7885.
Please follow this advice even if your symptoms are minor.
요약하자면 중국, 한국 및 일부 아시아 국가를 여행한지 14일 이내에 기침, 열, 호흡곤란 등이 생긴 사람은 집에 박혀서 아무도 만나지 말 것, 그리고 111(NHS)로 전화해서 어느 나라 갔다 왔는지 등을 알릴 것. 증상이 약하더라도 지침을 따를 것.
사실 나는 열도 안나고 이 감기가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감기라 그냥 일 시작해도 될 것 같았는데, 우리 매니저도 끝까지 확인을 하고 싶어하고 나도 혹시 모르니까 111에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영국 행정 : 끝없는 기다림 주의)
111에 전화를 하면 (한국 유심인 분들은 +44 111 요렇게 전화해야 할 것 같음) 기계가 전화를 받는다.
<기계가 물어보는 것들>
-계속하려면 9를 누르세요 : 9를 누른다
-너가 어디있는지 말해줘, 자치구 또는 지하철역 : 근처 지하철역 이름을 말한다 (예시: Golders Green Station)
-Golders Green Station 근처 맞아? : 맞으면 Yes라고 말한다.
그 뒤로는 끝없는 기다림...
체감 한 30분 기다렸더니 상담원이 전화를 받는다.
<상담원이 물어보는 것들>
-너 전화번호 뭐야?
-너 자신을 위해서 전화한거야? 아님 다른사람 때문에 전화한거야?
-너 생일(Date of birth) 언제야?
-성(Sir name), 이름(First name) 뭐야?
-너 주소 어디야? 우편번호 뭐야?
-너 GP 어디야?
-어느 나라 사람이야? 모국어(First language) 뭐야?
-언제 영국왔어?
-뭐 때문에 전화했어? 증상이 뭐야?
-기침할 때 피나온 적 있어?
-중국에 다녀왔거나 확진자 만난 적 있어?
-기침할 때 가슴 통증 있어?
-열 있었어?
-코에 분비물이 평소보다 더 많거나 평소랑 달라?
등등 (증상 관련 많이 물어봄)
아마 영어가 안되면 한국어 통역도 있는 것 같으니 영어가 어려우신 분들은 통역을 부탁해 보시길.
이렇게 열심히 대답하고 나면 끝! 이 아니라ㅜㅜ
"우리가 니 정보 다 입력했고 우리가 곧 전화 다시 걸게, 전화 받기 전까지 아무데도 나가지말고 집에 박혀있어!"
이러고 전화를 끊는다.
전화가 하도 안오길래 혹시 전화번호 잘못 말했나 싶어서
3시간 후에 전화를 다시 걸어서 잘 입력된거 맞냐고 물어봄 (한국 갔다왔더니 그새 못참는 사람 되어옴ㅋㅋ)
그랬더니 잘 입력된 거 맞고 지금 너무 바빠서 언제 전화줄 지 모르겠고 아무튼 최대한 빨리 전화준다고.
나 일갈지 말지 빨리 정해야된단 말이야ㅠ_ㅠ
그 때가 이미 학원 끝난 시간이었고, 매니저한테 나 아직도 전화 기다리고 있다고 근데 나 이제 괜찮아진거 같다고 말했더니
매니저가 자기들은 NHS의 절차에 따라 조치해야된다고, 전화 올때까지 기다리자고 함
밤 10시가 다되어서 020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다ㅋㅋㅋ 올 그래도 일하긴 하네
또 다시 첫번째 통화와 비슷한 질문을 와장창 받았는데,
나는 콧물이 평소보다 좀 더 많이 나는거 말고는 YES라고 말할 게 없었다.
그리고 감기가 3주전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거라고 말하니 그럼 그거 코로나 아닌 것 같다고
내일 너네 GP에 가서 진찰받아보라고 그랬다.
그래서 오늘이 되었고 일을 또 안가고 GP에 갔다.
전화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직접 방문했다.
리셉션에서 "나 한국에서 돌아왔는데 기침을 해서 어제 NHS에 전화했는데 증상이 충분하지 않고 이게 영국에서부터 시작된거라 나보고 GP로 가라고 했어" 이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너 증상이 있다는거야?' 그러면서 초비상모드로 변신
나보고 밖에 나가서 창문으로 얘기하자면서ㅠㅠㅋㅋㅋㅋㅋㅋ
창문으로 빼꼼 문을 열고 나에게 마스크를 주고 손소독제를 짜주고 자기도 열심히 발랐다ㅋㅋㅋ
그리고 "너 증상이 있으면 14일동안 그냥 집에 있어야돼. 여기 오면 안돼!" 이래서 "아니야 나 NHS에 전화했는데 GP로 가라고 했어!" 막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 직원이 NHS에 전화하고 의사한테도 물어보고 하더니 뭔가 드디어 얘기가 된 듯 했다.
'DO NOT ENTER' 를 A4용지에 크게 프린트하더니 리셉션에 있던 환자들 다 대피시키고ㅋㅋㅋ
나를 호위하면서 2층에 데리고가서 웬 사무실에 앉히고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전화로 의사랑 대화하라고 했다ㅠ_ㅠ 힝
전화로 의사가 자초지종을 물어봐서 다 대답하고, 증상도 다 대답하고 위에서 설명한거 다 얘기하고 나니
너 코로나 아닌거 같으니까 내려와서 나랑 만나자고 했다ㅋㅋㅋ
의사쌤을 드디어 만나고 (GP등록한지 1년만에 처음감ㅋㅋㅋ) 인사를 나누고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ㅋㅋㅋ
진찰을 다 한 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너 코로나는 아니지만 아무튼 몸이 안좋아서 기침을 하고 있는거니까 이번주까지 쉬었으면 좋겠어"
하면서 직장에 제출할 레터를 써주겠다고 했다.
"나 내일부터 일하고 싶어" 했더니 그래도 쉬는게 좋다며 단호박.
그래서 "그럼 그 레터에 나 코로나 아니라고 써줘" 그리고 레터를 받아서 나왔다.
나오면서 직원들한테 땡큐 했더니 걔네도 미안하다며ㅋㅋㅋ 아니야 이해해
그리고 레터 찍어서 매니저한테 '나는 바로 일할 수 있는데 의사는 쉬라고 하네, 언제부터 일할까?' 보냈더니
너무너무 다행이라며, 내일까지 일 쉬고 목요일부터 오라고 한다.
그래서 내일까지 쉬기로 했다ㅎㅎ
그래도 푹 쉬고 좀 나아져서 갈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으 진짜 감기 빨리 나아서 기침 안하고 살고싶다!! (특히 이 시국에!!ㅋㅋㅋ)
+아 그래도 맨 처음 영국와서 NI넘버 때문에 전화 할 때 'Date of birth' 못 알아들어서 세 번 물어본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병원에 가도 다 알아듣고 뭐가 잘못 돌아갈 때에는 어필을 할 수 있고,
그 정도 까지 영어가 늘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했다. (긍정킹)
아무튼 이 글이 111에 전화해야 하는데 무섭거나, 한국이나 중국에서 영국으로 왔는데 코로나 증상이 있거나,
그냥 영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 우한 폐렴 관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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